친애하는 h에게
친애한다는 말이 과연 올바른 것일지 한참을 고민중.
이 웃기는 어투도 어쩔 수 없는 상황.
그 오랜 시간 서로가 유지하고자 애썼던 거리만큼...
어제는 일자리를 부탁하고자 서울에 올라왔다.
단지 서울이라는 도시에 온 것만으로 네 생각이 떠나질 않았고
이런 상황을 예상한 듯 지워버린 너의 전화번호는 아무리 노력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행일까?
아무 것도 없는 내가 이 산뜻해 보이는 빌딩 사이를 평범한 직장인 마냥 걸어다니다 보니
어느 정도 뭔가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고 착각해버린 것일까.
들이마쉬는 공기가 산뜻해지고 몸이 가뿐해진다.
 일자리 계약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쉽게 끝이 났다.
돌이켜보면 삶의 중요한 부분들이 대부분 그렇게 쉽게 끝이 났다.
때로는 가족의 죽음도 그렇게 물 흐르듯 지나가 버린 것 같다.
내용이 없는 책의 목차같은 기억은 그런 편이다.
그러나 비밀잉크가 불빛에 드러나듯 목차에 따른 내용이 떠오르는 날이 있다.
일자리 계약후 친구와 술자리.
어차피 씹을 거라곤 그나마 달콤했던 학창시절.
그 돌아보는 순간이면 나는 알지도 못하는 너의 안부를 말하곤 한다.
내가 생각하는 너의 모습을...
취기가 머리를 울리는 와중에도 숫자를 조합한다. 항상 나는 중간 번호를 알지 못한다.
끝자리는 집전화 번호인데... 몇년째 느끼는 아쉬움에 나도 모를 희열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애당초 나의 그리움이나 외로움은 그리 길게 가지도 못하였는데 괜시리 번호를 지워
끝없이 늘어져 버린 셈이다. 누구에게 물어보면 금방 알 것을 왜이리 오랫동안 끌고 있을까.
그것은 우리의 관계가 누구나가 그저그런 남매로 알고 있고, 나 또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끝에
그저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은 명확하지만 결론이 없다.
마치 나의 거짓 안부를 들은 것인지 몇 달이나 비워둔 홈페이지에 삼일 지난 너의 간단한 인사가 있다.
무슨 일일까. 힘든 일은 아니었으면...그리고 적어도 삼일전 나를 한번쯤은 떠올려 준것에 감사하며...
나 또한 아무렇지 않게 너에게 글을 남겼다. 건강하고 웃으면서 잘 지내라고.
불현듯 어제 술자리와 함께 꺼져버린 핸드폰이 불안해진다.
언젠가 몇번의 기적처럼 텔레파시가 통했다고 믿어도 될 정도의 만남을 떠올린다.
편의점에 배터리를 맡기고 삼십분의 시간을 경찰서 앞을 지나는 범죄자 마냥 초조하게 떨었다.
해가 떠오르듯 밝아오는 핸드폰 액정에는 그저 고단한 삶의 기록이 이어져 있을 뿐.
나는 또 원점이구나.
참으로 오랜 시간 아무렇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음에도.
순간 스스로 부끄러워진 나는 핸드폰의 부재중 통화에 열심히 응답을 한다.
삶의 고단한 나락으로 너를 묻어 버리려 한다.
하지만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는 나를 보면
놓쳐서는 안될 것을 놓쳐버린 절망감과
언제가는 다시 만날 너와 그때 좀 더 나아진 내가 있기를 바라는 자존심같은 희망.
그럼에도 모든 인생의 이야기가 그 봄날 저녁에 끝이 나버린 것 같다.
너와 마지막으로 걸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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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승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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